글 | 황광해 칼럼니스트
육수를 낸 맑은 장국에 흰 쌀떡을 넣고 끓인다.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색색의 고명을 올린다. 완성된 떡국을 먹으며 올해도 무탈하고, 풍요롭기를 바란다. 그렇게 또 한 해를 맞이한다.


떡국 대신 동전이라도 한 닢 주면 좋으련만


배고픈 시절이었다. 1960년대 후반 깊은 산골. 보릿고개는 얼추 지났지만 농촌에서는 굶는 이도 많았다. 설날. 100호가 채 되지 않는 시골 마을에 반쯤은 친척이다. 꼬마들은 신났다. 먹을 것이 지천이다. 집 안팎에 모두 먹을 것이 있다. 떡국과 떡, 귀한 과일부터 생선, 고기 몇 점 등등. 평소 보기 힘들던 강정羗釘과 곶감도 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동년배의 꼬마들이 동네 귀퉁이에 모인다. 세배를 갈 순서는 이미 정해져 있다. 혈족 중 항렬이 높은 집부터 간다. 증조할아버지 뻘 되는 어른 집부터 차차 차례를 낮춘다. 더러 타성받이 집에도 세배를 간다. 어차피 한 다리 건너면 친척이다. 늦은 오전부터 시작된 세배 행렬은 오후 서너 시에 끝난다. 세배를 네댓 시간 다녔다. ‘슬픈 일’은 이때 일어난다. 꼬마들 배가 죄다 볼록하다. 숨을 쌕쌕 몰아쉰다. 모두들 허리춤을 느슨하게 풀었다.


▲용수산의 별미로 꼽히는 조랑떡국. 담백함 뒤로 깊은 맛이 느껴진다.


새해다.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으니 귀한 음식들을 장만했다.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세배를 한다. 꼬마들은 세뱃돈을 주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언감생심. 농촌에 돈이 있을 리 없다. 귀한 음식은 이미 장만해두었다. 어느 집이나 떡국, 떡, 과일, 곶감, 강정 등을 내놓는다. 한두 집을 지날 때는 마음껏 먹는다. 평소 보기 힘든 음식이다. 문제는 서너 집 지나면서 일어난다. 어느 집에서나 떡국, 떡, 과일, 곶감 등등을 비슷한 모양새로 내놓는다. 아, 그저 십 원짜리 지폐 그것도 아니면 오원짜리 백동전이라도 하나 쥐어주면 좋으련만. 열 집이면 열 집 모두 ‘동전 대신 떡국’이다. ‘염치’라는 말을 그럴 때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 어린 마음에도 “요 앞집에서 먹었는데 이 집에서 먹지 않으면 섭섭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두 번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겸손을 떨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옆에서 자꾸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보라고 권한다. 애당초 귀한 음식이긴 하다. 체면치레로 한두 숟가락 뜬다. 이게 결국 ‘원샷’으로 이어지니 문제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동네꼬마들 배는 남산 만해진다. 세뱃돈 생각은 어느새 까마득히 멀어졌다.


떡국은 떡을 국물에 넣은 것


우리는 언제부터 떡국을 먹었을까?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오늘날 같은 떡국이 나온다. “동국세시기”는 19세기 중반(1849년)의 책이다. 떡국은 그 오래 전부터 있었다. 정조 15년(1791) 12월24일(음력)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제목은 “하번군에게 돌아가는 길에 양식을 주어 보내도록 명하다”이다. 정조의 지시다. “금위영과 어영청의 하번군(下番軍)이 호서군(湖西軍)이라 한다. 연말이 닥쳤는데 내일 군대에서 풀어 보내면 넉넉히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양식을 주어 보내어 부모처자와 함께 새해 떡국을 배불리 먹게 하라."


▲이제는 문을 닫은 삼청동 ‘장원’의 떡국


‘호서’는 대략 충청도 일대다. 한양과 멀지 않다. ‘하번군’은 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와 군역을 마친 다음,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말한다. 연말이다. 군역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양식을 주어 고향에서 가족들과 떡국을 끓여 먹게 하라는 정조대왕의 지시다. 떡국을 ‘병갱餠羹’이라고 불렀다. 떡국은 ‘병갱’ 혹은 ‘병탕餠湯’이다. 떡국은 ‘떡[餠]+국[羹 혹은 湯]’이다. 곡물을 쪄서 떡을 만든 다음, 국물 음식에 넣은 것이다. 떡국이 귀한 이유는 간단하다. 떡국은 떡으로 만든다. 떡은 곡물로 만든다. 곡물이 귀하던 시절, 떡국이 귀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필자가 떡국을 배불리 먹었던 시기도 설날이다. 떡, 떡국은 설날, 생일 등에만 먹을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세종대왕에게 아버지 태종은 멘토이자 스승이다. 삼남인 자기에게 권력을 물려준 고마운 이다. 태종이 돌아가신 후 모신 제사(태상왕 수륙재)에 관한 기록이다(세종 4년, 1422년 5월). “(전략)진전(眞殿)과 불전(佛前) 및 승려 대접 이외에는 만두(饅頭), 면(麪), 병(餠) 등의 사치한 음식은 일체 금단하소서.” 만두, 국수와 더불어 떡은 ‘사치한 음식’이다. 사치한 음식인 떡을 임금과 수륙재를 진행하는 승려, 부처 이외에는 주지마라는 뜻이다.


▲서울 부암동 '자하손만두'의 조랑이 떡국. 만둣국에 조랑이 떡을 넣었다. 정갈한 우리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조랑이 떡국’은 귀하게 여긴다. 개성음식이다. 조랑이 떡국 때문에 실수한 적도 있다. 서울 부암동의 ‘자하손만두’. 만둣국에 조랑이 떡국을 넣어서 내놓는다. 조랑이 떡국을 보고 “이 집 주인이 개성출신이구나!”라고 지레짐작했다. 선대는 반드시 개성사람이라고 믿었다. 여기저기 칼럼을 쓰면서 ‘개성반가음식’이라고 떠들었다. 주인은 서울 부암동 일대서 나고 자랐다. 개성사람들의 음식점에서 조랑이 떡국을 보고 그대로 만든 것뿐이었다.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정월대보름의 소주 원샷


잡채雜菜는 ‘채소 모둠’이다.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야 한다? 엉터리다. ‘잡’은 ‘여러 가지’라는 뜻이다. ‘여러 가지 채소’ 혹은 ‘채소 모둠’이 잡채다. 광해군 시절, ‘잡채상서雜菜尙書’ ‘침채정승沈菜政丞’ 같은 표현이 떠돌았다. 임금에게 잡채나 김치를 진상하고 벼슬을 얻었다는 뜻이다. 잡채는 귀한 음식이었다. 당면唐麵은 1920년대 이후 한반도에 상륙한다. 조선시대에는 당면이 없었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마당 넓은집' 상차림. 고기 집이지만 풍성한 나물로 유명하다.


산나물, 들나물을 우리처럼 귀하게 여긴 민족도 없다.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는 ‘山菜산채’라는 표현이 없다. 우리처럼 여러 종류의 산채를 먹지도 않는다. 이른 봄, 집집마다 햇나물로 오신반五辛盤을 만든다. 움파[葱芽], 산갓, 당귀 싹, 미나리 싹, 무 싹 등 여러 채소로 꾸민 것이다. 집집마다 먹고, 옆집에 권하기도 한다. 움파는 겨울을 지낸 파다. 한번 베어내고 나면 파는 푸른색이 아니라 노란색이 짙어진다. 맛도 맵기보다는 달다. 산갓은 는쟁이냉이 혹은 숟가락 냉이다. 이른 봄, 우리나라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당귀 싹은 당귀의 새순이다. 무, 미나리는 지금도 우리가 흔하게 먹는 채소다. 사치스럽거나 비싼 것이 아니라 새봄에 처음 만나는 햇나물이니 귀하게 여겼다.


한겨울인 정월대보름에는 묵나물을 먹는다. 겨울에는 지난 가을 마련한 말린 나물을 먹었다. 팥 등 잡곡 넣은 오곡밥을 짓고, 고사리, 무청시래기, 호박고지, 버섯, 말린 가지, 말린 피마자 잎 등으로 정월대보름 나물상을 차렸다.


    

▲향긋한 나물의 향연. (왼쪽부터) 각종 나물이 풍성한 여주 '걸구쟁이' 상차림, 산나물과 들나물이 풍성한 속리산 '경희식당'의 나물 밥상


이날 아침에는 귀밝이 술[耳明酒, 이명주]을 마신다. 이 귀밝이 술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다. 예닐곱 살의 어린 아이가 술맛을 알 리가 없다. 아침 밥상에 귀밝이 술로 청주가 올랐다. 입에 조금 대었더니 맛이 달았다. 입술을 겨우 적실 정도이니 좀 더 마시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오후 시간, 부엌에 갔더니 술을 담았던 자그마한 항아리가 있었다. 큰 대접으로 반 대접 정도를 퍼서 ‘원샷’했다. 이 원샷이 문제다. 청주가 아니라 독한 소주였다. 목구멍으로 불기둥이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원래 맛이 이런가, 생각했다. 거기까지. 이른바 필름이 끊겼다. 깨어나 보니 집에서 제법 먼 면 소재지 보건소에 누워 있었다. 그 이후로도 40도쯤 되는 증류소주를 대접으로 마셔본 적은 없다. 1960년대 어느 해, 정월대보름날의 일이다. 그해는 쥐불놀이도 못하고 끙끙거리며 누워 있었다. 속은 울렁거리는데 달은 참 밝았다.


새해 건승하시길!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용수산: 서울 종로구 창덕궁1길 2 / 02-743-5999

     2.   자하손만두: 서울 종로구 백석동길 12 / 02-379-2648

     3.   마당넓은집: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광여로 29 / 031-797-7771

     4.   경희식당: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7길 11-4 / 043-543-3736

     5.   걸구쟁이: 경기 여주시 강천면 강문로 707 / 031-885-9875




댓글 0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