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장준우 쉐프
전 세계 각국의 문화권마다 새해를 맞이 풍습이 있다. 이날만큼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가족 일가 친지가 한 자리에 모여 특별한 음식을 함께 먹는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으로 설날에 떡국을 먹는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먹는 것이란 말도 있듯 새해를 맞아 처음 먹는 떡국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함께 한 해의 운수를 기원하고 가족 간의 정을 확인하는 자리는 지역과 문화, 세대를 막론하고 새해를 맞는 일종의 의식이다.

모데나 지방의 새해 음식, 잠포네

유럽 사람들도 새해가 되면 특별한 음식을 먹는다. 그중 가장 독특한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이탈리아의 잠포네(Zampone)다. 이 음식은 돼지 앞 발 속을 파낸 후 그 속에 돼지 껍질과 뱃살, 지방을 갈아 넣고 만든 일종의 소시지다. 잠포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이탈리아 요리학교 유학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이탈리아 각 지방의 전통음식’이란 책에서였다. 한번 훑어볼 요량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페이지를 펼쳤을 때 처음 눈에 띈 요리가 잠포네였다. 먹음직스러운 구릿빛 자태를 영롱하게 뽐내는 잠포네의 모습은 영락없는 족발이었다. 이탈리안 셰프에게 물어보니 모데나 지역에서 주로 먹는 새해 요리라고 했다. 모데나 사람들은 어째서 이런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된 것일까.

잠포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16세기 초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와 치열하게 대립하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프랑스에 친화적이었던 모데나 근교의 미란돌라라는 마을을 포위하기로 했다. 누군가 교황의 군대가 오기 전에 돼지를 모조리 잡아버리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교황의 군대가 마을에 들어서면 식량인 돼지를 빼앗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래 저장할 수 있도록 소시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돼지를 남김없이 활용하고자 발까지 이용해 소시지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잠포네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마치 역사적인 사실처럼 들리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서 눈 여겨보아야 할 점은 ‘돼지를 남김없이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대목이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새해 음식, 코테키노

잠포네와 비슷한 음식으로 코테키노(Cotechino)가 있다. 코테키노란 껍질을 뜻하는 코티카(cotica)에서 유래했다. 일반적인 소시지가 살코기와 지방을 이용해 만든 반면 코테키노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돼지 껍질과 뱃살, 등지방 등 활용도가 떨어지는 부위로 만들었다. 잠포네가 부속 부위를 족발 안에 넣어 만든 소시지라면 코테키노는 같은 속 재료를 돼지 창자에 넣었다는 차이가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잠포네는 코테키노의 한 종류다.

잠포네가 모데나 지역 새해 음식이라면 코테키노는 모데나를 포함한 이탈리아 중부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새해 음식으로 통한다. 이 말은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이 새해에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독립적인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였기에 지역색이 매우 강한 편이다. 중년 이상의 이탈리아인들은 아직도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불리기보다 밀라노, 시칠리아 등 지방과 도시 출신으로 불러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코테키노와 잠포네는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에밀리아 로마냐, 모데나 사람들의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하나 수단인 셈이다.








코테키노와 잠포네는 어쩌다 새해 음식이 되었나?

전통적으로 코테키노와 잠포네는 삶은 후 주로 익힌 렌틸콩이나 폴렌타, 볶은 시금치 등과 함께 접시에 담긴다. 돼지가 풍요를 상징하고 렌틸콩이 동전을 닮아 새해에는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코테키노와 렌틸콩을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돼지를 잡는 건 대개 겨울에 이뤄진다. 추운 날씨를 버티지 못할 것 같은 돼지를 골라 내기도 했거니와 더운 날에 비해 위생상 안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겨울에 잡는 돼지들은 주로 소시지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김치를 겨울에 담그듯 가공한 소시지는 유럽인들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이었던 셈이다.

돼지에서 가장 선호되는 부위는 살이 두툼하게 붙어 있는 뒷다리였다. 이는 귀족들의 것이었지만, 비계가 붙은 머리 고기, 껍데기, 창자, 돼지 족 등은 언제나 서민들의 몫이었다. 코테키노는 지방함량이 높아 살코기 비중이 높은 일반 소시지에 비해 장기간 보관이 어려웠다. 이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소비해야 했는데 그 시기가 새해 직전 혹은 직후였다. 1년 중 그때만큼은 가족끼리 빙 둘러앉아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코테키노와 잠포네에 렌틸콩과 폴렌타가 곁들여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추운 데서도 잘 자라는 렌틸콩은 가난한 이들의 영양을 책임지는 작물이었고,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폴렌타는 맛보다는 쉽게 포만감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기복적 의미는 한참이 지난 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코테키노와 잠포네가 소박한 서민 음식이지만 재료가 기름지다 보니 맛은 상당히 호사스럽다. 돼지껍질의 젤라틴과 지방이 뒤섞여 있는데 맛은 마치 우리네 돼지머리 편육을 떠올리게 한다. 코테키노와 잠포네에는 약간의 소금과 향신료 믹스가 첨가된다. 집집마다 김장 맛이 다르듯 소시지도 향신료의 배합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 돼지머리 편육과 같은 식감의 이 음식들에 풍부한 향과 맛을 더하는 것은 향신료의 역할이다.


이탈리아 모데나의 ‘슈퍼 잠포네’ 만들기 대회

모데나 지방의 한 작은 마을 카스텔누오보 랑고네(Castelnuovo Rangone)에서는 매년 연말이 되면 ‘슈퍼 잠포네’ 만들기 행사를 연다. 초대형 비빔밥 내지는 최장신 김밥을 만드는 우리의 지역행사와 비슷하다. 기네스북에 기록된 슈퍼 잠포네는 무려 1,038kg에 육박한다. 행사가 끝나면 무료로 시식 행사도 한다. 이탈리아 여행 시, 슈퍼 잠포네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서울에서 코테키노를 만날 수 있는 곳]

에큘리

‘르 코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프렌치 레스토랑 <루블랑>으로 이름을 알린 신민섭 셰프가 운영하는 유러피안 선술집이다. 이탈리아의 코테키노를 비롯해 빠떼와 쏘시송, 그리고 프랑스의 사퀴테리, 스페인의 매콤한 소시지 초리조 등 매장에서 직접 만든 육가공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만날 수 있다.

주소 :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65-1

전화 : 070-4110-2040


[프랑스식 정통 육가공 소시지 전문점]

라까브뒤꼬숑

<레스쁘아>의 임기학 셰프가 운영하는 샤퀴테르 전문점이다. 샤퀴테르란 프랑스인들이 즐겨먹는 육가공 제품을 의미한다. 이곳에서는 프랑스 정통 테린과 파테를 판매하고 있다. 특히 푸아그라로 만든 파테가 인기다. 특이하게도 평양 만두소를 베이스로 평양 소시지도 판매하고 있다.

주소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8-8 2층

전화 : 02-515-6034


랑파스81

‘막다른 골목’을 의미하는 이 레스토랑은 프렌치 다이닝 바다. 양고기 소시지인 메르게즈, 돼지고기에 파마산 치즈와 이탈리안 파슬리를 섞은 랑빠스소시지 등이 대표 메뉴다. 오랜 정성이 깃든 샤퀴테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주소 : 서울 마포구 동교로30길 17-1 101호

전화 : 070-7779-8181


[유럽의 다양한 소시지를 만나고 싶다면]

존쿡델리미트

2005년 초, 국내 에쓰푸드와 미국의 육가공 마이스터인 존 마크 스티븐슨이 손을 잡고 만든 브랜드다. 육가공 제품을 베이스로 하여 샐러드와 브런치 그외 많은 햄가공의 맛난 음식을 제공해 준다. 한켠에 준비된 쇼케이스 안에서 진열상품 각종 슬라이스햄과 데일리소세지를 구입할수 있다.

주소 : 서울 강남구 논현로175길 38

전화 : 02-514-0040


강추맛집의 새로운 필자를 소개합니다!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홀연히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ICIF를 졸업한 후 시칠리아로 날아가 펜 대신 팬을 잡고 주방에서 분투했다. 유럽 10개국 60여 개 도시를 발로 뛰고 혀로 취재한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를 펴냈다. 요리와 사진, 그리고 글을 삼위일체로 삼아 남은 생을 지루하지 않게 살고 싶다는 소박하고도 큰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서울신문에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에큘리 :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65-1 / 070-4110-2040

     2.   라까브뒤꼬숑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8-8 2층 / 02-515-6034

     3.   랑파스81 : 서울 마포구 동교로30길 17-1 101호 / 070-7779-8181

     4.   존쿡델리미트 : 서울 강남구 논현로175길 38 / 02-815-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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