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의 성장을 응원합니다
프로 농구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김주성 선수가 2017-20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레전드’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2002~2003년 신인상, 정규리그 MVP(2003~2004, 2007~2008), 챔피언결정전 MVP 2회에 더해 1만 288 득점과 4425개 리바운드, 그리고 1,037개의 블록슛이라는 불멸의 기록까지. 게다가 그는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원주DB프로미의 우승을 견인하며 그의 은퇴를 더욱 빛냈다. 농구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DB와 처음과 끝을 함께한 그의 농구인생


2002년 TG삼보 입단 이후 동부-DB까지 오로지 원주에서만 16년을 보낸 김주성 선수. 자유계약(FA) 시장의 활성화로 이적이 잦은 분위기 속에서 그의 소신은 더욱 빛났다.

“이적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팀에 대한 신뢰도가 워낙 높았어요. 애정도 컸고요. 원주라는 지역이 주는 특색도 큰 몫을 한 거 같아요. 좋은 분들이 많아서 떠날 수 없었거든요.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아직도 제가 원주에서 나고 자랐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정도예요. (웃음)”

사실 그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고민했다. 하지만 1년 더 선수 생활을 하며 후배들을 도와달라는 이상범 감독의 요청에 은퇴를 미루게 되었다. 그리고 농구 인생 처음으로 식스맨을 맡았다. 구단과 후배들을 향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농구선수로 뛰는 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어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후배들이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도움을 많이 주려고 했어요. 얘기도 많이 나누고, 연습도 함께 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 해외에서 지도자 과정을 밟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는 후배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후배들은 하늘같은 선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서로 큰 도움이 되었다.



블록슛의 황제, 천하를 호령하다


김주성 선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늦게 시작한 탓에 농구 기술이 부족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중앙대 진학 이후에는 센터 역할을 맡으며 수비에 더욱 집중했다. 이때 그는 블록슛을 하는 타이밍과 기술을 익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은 ‘블록슛의 황제’라는 칭호였다.

언제나 한결같을 것만 같던 그도 3년 전, 내측인대가 다치는 부상을 입으며 시련을 겪었다. 치료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두 달가량 쉬어야만 했다. 은퇴해야 하는 건 아니냐는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선수 생활 중에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한 건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부상으로 은퇴를 하고 싶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일주일에 3~4번씩 등산을 다니면서 몸을 많이 회복했죠. 그리고 트레이너분들과 동료분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어요.”


▲ 2018년 2월, 김주성 선수의 국가대표 은퇴식. 이날 김 선수는 감사패와 국가대표 유니폼이 걸린 액자를 함께 선물받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 16년


지난 3월에는 김주성 선수의 국가대표 은퇴식이 진행되었다. 1998년 대학 초년생 시절 그리스 세계선수권(현 농구월드컵) 출전을 시작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16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FIBA 농구 월드컵 본선 2회(1998, 2014), 아시안게임 5회(1998~2014), FIBA 아시아선수권 6회(2001~2013) 참가라는 화려한 이력은 김주성 선수가 한국 농구대표팀의 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김 선수는 2002년,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두 개를 획득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국가대표로서는 한 번 더 뛰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아시아뿐 아니라 오세아니아 팀들과 경기해볼 기회도 생겼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은퇴식 때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는 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노장 선수들의 노련미가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젊은 선수들의 투지가 빛났다며 우승 비결을 설명했다.

“아시안게임은 항상 부담감이 컸어요. 프로농구 인기가 사그라지는 게 대표팀이 성적을 내지 못해서 그런 건가 싶어 더 잘하려고 노력했죠. 무엇보다 태극마크를 달고 가는 거잖아요. 애국심 때문에 그런지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는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중국팀 야오밍 선수와의 경기를 꼽았다.

“<2002부산아시안게임 당시 이란이나 중국에 비해 우리 팀이 열세였어요. 특히 야오밍 선수는 아주 만리장성 같았죠.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거고,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었으니까, 부딪힐 만큼 부딪혔죠. 홈코트에서 벌이는 경기인 만큼 지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쉽진 않았지만, 노련한 선배들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DB프로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다

▲ 2017-2018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쥔 DB프로미 프로농구단의 모습



농구선수로서 지닐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거머쥔 그에게 또 하나의 영광스러운 수식어가 붙었다. 바로 공식 은퇴를 선언한 뒤 정규리그 우승을 따낸 것이다. 1위를 달리던 원주DB프로미는 마지막 경기에서 전주 KCC가 서울 삼성에 패하면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김주성이 정규리그 우승을 경험한 것은 데뷔 후 이번이 다섯 번째다. 그는 우승의 감격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규리그 우승 후 울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벅찬 감동을 숨기지 못했다. 16년간 농구선수로서 살아온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부탁했다.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만큼 제 자신에게 자부심 가져도 될 것 같고요. 미래의 김주성이 과거의 김주성을 생각하면서 무엇이든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덧붙여, 후배들도 우승의 감동과 초심을 은퇴할 때까지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주성 선수는 4월 20일까지 진행되는 플레이오프를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난다. 3월 15일 프로농구 미디어데이에서 플레이오프에 임하는 각오를 여섯 글자로 표현해 달라고 하자 그는 “끝까지 달린다” 라고 답했다. DB가 2007-2008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의 통합우승을 이뤄냈던 전적에 힘입어, 그의 마지막 무대가 아쉬움 없이 장식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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