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이재국 방송작가
아재개그는 촌스러움과 썰렁함의 상징이다. 김부장이 술자리에서 아재개그를 하면 그 자리는 곧 파할 자리라는 걸 암시했다. 직원들이 싫은 티를 내도 꾸준히 본인의 개그를 펼쳐온 김부장. 그런데, 요즘 김부장의 아재개그가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상해졌나. 나도 아재가 된 걸까?아재개그 위상이 달라졌다.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개그, 가장 직관적이며 가장 심플한 유머 코드로 재평가 받고 있다. 원래는 재미없는 말장난, 언어유희, 유행에 뒤쳐진 개그를 의미했지만 요즘은 “아주 재밌는 개그” 그래서 <아재개그>로 해석되기도 한다는데, 아주 재밌는 개그라니… 아직은 받아들일 수 없다.


아재개그는 어떻게 대중 속으로 스며들었나!


아재개그는 어디에서 왔을까? 사람들은 한 때 유행했던 <만득이 시리즈>나 <최불암 시리즈> 그리고 <허무개그> 같은 단순 개그가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 아재개그는 사라지지 않고 사장, 부장 등 나이 많은 아재들 사이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재들은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친해지기 위해 그들이 알고 있는 가장 재밌는 유머코드를 다시금 꺼내기 시작했다.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이 했다면 썰렁했을 개그가 부장님이 했다는 이유로 모두를 억지로라도 웃음 짓게 만들었다. “인천 앞바다를 반대로 하면? 인천 엄마다!” “대통령 선거의 반댓말은? 대통령 앉은 거!” “누룽지를 영어로 하면? bobby brown” “손님이 뜸하면 돈 버는 사람은? 한의사” 그렇게 웃기도 뭐하고, 안 웃기도 뭐한 어정쩡한 상태로 아재개그는 대중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세대 간의 소통을 도와주는 아재개그


그렇게 부장님의 전유물이었던 아재개그는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에서 막내 할배로 출연한 김용건 할배가 시종일관 아재개그로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을 보면서 실버세대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현존하는 최고의 아이돌 ‘방탄소년단’의 멤버 진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평소 아버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아재개그를 자주 사용한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10대들 사이에서도 아재개그가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됐다. 그렇게 진짜 아재들만 하던 아재개그는 이제 아재를 넘어 할배와 아이돌도 즐길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1차원적인 유머코드가 됐다.


사실 10대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개그 소재를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아재개그는 세대 간의 소통을 도와주고, 개그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도 약간의 센스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고 심플한 유머 코드가 되고 있다.


아재개그를 위한 변명


아재개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정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아빠들이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개그라는 의미로 ‘dad joke’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도 ‘오야지 개그’라는 유머 코드가 있다. 비슷한 발상으로 40대 아저씨들이 쓰는 쓸데없는 농담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아저씨’라는 말은 왜 촌스럽거나, 센스가 없는 사람의 대명사가 됐을까? 원빈이 주연을 맡은 영화 <아저씨> 덕분에 세상에 저렇게 잘생기고 젊은 아저씨도 있구나 잠시 위로 받은 적이 있고, 올해 초 방영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덕분에 “그래 아저씨가 꼭 촌스러운 것만은 아니야!” 라고 위로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저씨는 철지난 느낌이고 아재는 거기에 썰렁한 이미지까지 더해준다. 그래도 아재개그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이든 세대에게 귀여움을 받고 싶어하는 아재들의 처절한 노력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재개그로 사랑받는 법


아재개그가 사랑을 받는 건, 이 개그가 가장 1차원적인 웃음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원래 유머나 개그라는 건 비유나 비약을 통해서 웃음을 주고, 단순한 말장난 보다는 한번쯤 꼬아주는 것이 더 세련된 개그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복잡한 걸 싫어하다보니 듣자마자 웃음이 나오는 1차원적인 웃음 코드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재개그로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아재개그를 잘하려면 언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개그를 하는 타이밍을 잘 알아야 한다. 아재개그는 보통 언어유희 스타일과 고전 개그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언어유희 스타일은 “바나나 먹으면 내게 반하나?” “참외를 먹으니 참외롭구나!” “들깨를 먹었더니 술이 들깨“처럼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전 개그 스타일은 “왕이 넘어지면 킹콩”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아몬드” “진짜 새를 두 글자로 줄이면? 참새” 처럼 유머책에서 한 번쯤 본적 있거나 초등학교 때 한번쯤 들어본 적 있는 옛날 개그를 최근에 다시 하는 경우, 아재개그로 평가 받게 된다. 평소에 유머러스한 사람은 아재개그까지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 잘생긴 사람이 노래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면 인간미가 안 느껴지는 것처럼 아재개그는 평소에 안 웃기거나 유머에 별로 소질이 없는 사람에게 더 유리하다. 웃겨야겠다고 욕심내지 말고, ‘안 웃으면 어때?‘ 라는 편한 마음으로 던지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아재개그를 위하여


실없이 던지는 농담이지만 우리는 그 웃음에 목말라 있는지도 모르겠다. 찰리 채플린은 “웃음은 강장제이고, 안정제이며, 진통제이다.”라고 말했다. 좀처럼 웃을 일 없는 일상 속에서 김부장이 던진 한마디가 그리 불청객은 아니었을 터. 딱딱한 직장 상하관계를 타파하기 위한 아재의 노력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친구들과 모임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아재개그를 던져보았다. 뭐하는거냐며 얼굴을 찌푸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두명이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웃음이 전염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아재개그는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웃음코드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박대리. 맥주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 뭔지 알아? 유언비어야~“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면, 이 웃음도 전파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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