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메밀은 미네랄, 비타민, 폴리페놀 등이 풍부하여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 또한 체온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는 메밀은 여름철 대표 음식이기도 하다. 메밀묵, 메밀전, 메밀전병 등 메밀로 만든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이처럼 무더운 한여름엔 살얼음 동동 떠있는 시원한 ‘평양냉면’이나 ‘메밀국수’가 생각나기 마련이다.


‘면스플레인’이란 말이 있다. ‘면(麵)+익스플레인EXPLAIN’의 준말이다. 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잘난 척 설명하는 걸 뜻한다. ‘냉면성애자’라고도 한다. ‘면스플레인’의 대표적인 표현은 “평양냉면은 3번 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에 반했다” “평양냉면은 역시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등등이다. ‘면스플레인’ 하는 ‘꼰대’들 중에 엉터리가 많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단어가 있다. 정식 단어다. '여자 앞에서 잘난 척 주절주절 설명하는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동의어는 ‘꼰대’ 혹은 ‘오빠 병’이다. ‘맨스플레인’ ‘면스플레인’은 ‘꼰대’와 다름 아니다.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면 된다. 굳이 남에게 설명하고 강요하면 곤란하다. 미리 밝혀둔다. 이 칼럼도 ‘면스플레인’일 수 있다. 물론 면스플레인에서 벗어나라는 뜻에서 이 칼럼을 쓴다.


▲ 서울 을지로의 ‘우래옥’. 창업은 1949년, 고기 육수를 사용한다. 돼지고기에서 쇠고기로 바뀌었다. 오른쪽 사진은 김치가 들어간 김치말이냉면.


평양냉면은 결코 슴슴하지 않다


‘심심’이라고 하지 않고 꼭 ‘슴슴’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야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가 보다. 결국 심심하고 밍밍한 맛이다.

인공조미료 MSG는 1908년 일본인 학자 키쿠나에 이케다가 처음 개발했다. 1920년대 초 한반도에 상륙하여 20년대 후반, 신문에 인공조미료 ‘아지노모토’ 광고가 실린다. 아지노모토는 평양의 냉면집을 대상으로 ‘면미회麵味會’를 만든다. ‘아지노모토를 사용하는 평양 인근 냉면집 주인들 모임’이다. 아지노모토는 전국적으로 면미회를 확대한다. 면미회를 통하여 조미료를 확산시킨 것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널리, 적극적으로 조미료를 사용한 것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조미료 유해논쟁이 아니다. 나쁘다, 좋다가 아니라 상업적인 평양냉면은 그 출발부터 조미료와 더불어 했다는 뜻이다. 실향민들 중 연세 드신 분들은 대략 1920-1940년대 출생이다. 북에서 냉면을 먹었다면 이미 조미료가 왕창 들어간 냉면을 먹은 것이다. 그분들이 그리는 ‘고향의 맛’은 조미료를 잘 넣은 맛이다. 그런데 맛이 밍밍하고 심심하다고? 평양냉면을 두고 ‘슴슴하다’고 평가할 일은 아니다.



평양냉면의 육수를 말하다


동치미 국물은 추운 지방에서 주로 먹었다. 따뜻한 남쪽도 한 겨울에는 동치미 국물이 가능하다. 문제는 동치미를 만드는 시기와 공간이다. 겨울 동치미는 늦가을에 수확한 무로 만든다. 한겨울, 동치미는 깊은 맛을 낸다. 여름철에는? 불가능하다. 무의 맛이 지리다. 대도시의 식당들이 여름철 깍두기에 감미료를 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리면서 쉬이 짓무른다. 설탕을 넣어도 마찬가지로 금세 상한다. 결국 감미료를 넣는 수밖에 없다.


동치미는 관리하기에도 골칫거리이다. 동치미는 대장균에 취약하다. 끓이면 되는데, 끓이면 더 이상 동치미가 아니다. 공간도 문제다. 땅값 비싼 한국에서 그 많은 동치미 국물을 보관할 공간을 갖추기 어렵다. 결국 고기 육수와 조미료 사용이 중요해진다.


▲무교동(다동) ‘남포면옥’은 보기 드물게 동치미, 고기 육수를 섞어 쓰는 집이다. 비율이 매년 달라지니 정확한 비율은 알기 힘들다.


▲장충동 ‘평양면옥’ 냉면그릇의 윗부분에는 쇠고기 수육 한 점과 돼지고기 수육 한 점이 올라 있다. 쇠고기, 돼지고기를 삶아서 그 육수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겨울냉면과 선주후면


방송에 출연자들도 냉면은 겨울음식이라며, ‘선주후면先酒後麵’을 이야기한다. 추운 겨울 술 한 잔 마시고 냉면 먹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뜻이다. 전통이 아니라 과거라 해야 옳다.


평양냉면의 시초는 일제강점기의 북한이다. 냉장고가 가정에 있을 리 없다. 결국 시원한 냉면은 동치미에 살얼음이 끼는 겨울에 먹었다. 메밀도 마침 11월 말경 수확한다. 그래서 겨울냉면이다. 추운데 또 차가운 것을 먹으면 속이 뚫리는 것이 아니라 얼어붙는다. 어떻게 할까? 우선 독주부터 한잔! 술을 한잔 털어 넣고 나서 냉면을 먹으면 훈훈한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뒤엉킨다. 견딜 만하다.


이렇게 더운 여름, 대낮에 선주후면을 하면 어떻게 될까? 에어컨 바람 아래서 술기운은 쉬 오르지 않는다. 문제는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부터다. 외부 기온은 30도를 넘기고 습도마저 높다. 기운이 확 오른다. 예전부터 낮술에 취하면 위, 아래 몰라본다고 했다. 선주후면, 겨울냉면? 냉장고 없던 일제강점기, 북쪽에서의 이야기다. 술 팔기를 원하는 가게의 소망이지 무슨 원칙이나 전통은 더더욱 아니다.


▲홍천의 장원막국수 본점. 메밀 100%로 막국수를 만든다. 외진 시골길에 있는 식당이지만 최근 서울을 비롯 여러 곳에 분점을 냈다. 겨울철 동치미가 일품.


메밀 비율에 관한 고찰


기록을 뒤져보니 2010년 11월 22일의 일이다. 처음으로 100% 메밀 면을 먹어봤다. 장소는 서울 을지로의 ‘춘천산골막국수’. 마침 주인이 필자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회원이다. 이집에서 카페 회원 40여 명과 100% 메밀 면, 막국수를 먹었다. ‘호사’였다. 지금도 기록에 남아 있으니 날짜까지 기억한다.


▲을지로 ‘춘천산골막국수’. 꿩고기 육수와 단자를 얹은 100% 메밀 막국수다.


냉면의 메밀 비율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역시 정답은 없다. ‘취향대로’가 정답이다.

100% 면은 일본식 표현으로 ‘주와리 면’이라고 한다. 메밀 80%에 밀가루나 전분 20%는 ‘니하치 면’ ‘하치와리 면’이라고 한다. 대단한 표현 아니다. ‘10할 면’ ‘8할 면’ ‘2, 8 면’ 정도다. 어느 것이 좋을까? 취향대로다. “원래 평양냉면은 메밀 80%, 감자전분 20%로 만들었는데 남쪽에서 고구마로 바뀌었다. 일본에도 니하치 면이 유행이다”라고 아는 체, 설명한다. 전형적인 면스플레인, 꼰대다.


▲ 국산메밀 100% 막국수. ‘삼군리 메밀촌’은 100% 막국수의 신호탄이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20여 곳이 100% 막국수를 내놓고 있다.


필자가 100% 메밀국수를 먹어본 2년 후에 강원도 횡성의 ‘삼군리메밀촌’이 방송에 소개되었다. 산골에서 만드는 100% 국산 메밀국수였다.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예전에는 “100% 메밀국수는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동안 제분기계와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삼군리메밀촌’ 후 오래지 않아 메밀 100%, NO MSG 냉면도 나타났다. 분당의 ‘능라(능라도)’다.


▲ 분당 ‘능라’. 능라는 100% 메밀 사용 냉면으로 이름을 얻었다.


메밀 음식 전문 식당에서는 여전히 “여름에는 메밀 4할, 겨울에는 메밀 6할”을 주장한다. 나머지는 전분과 밀가루다. 어느 것이 좋다고 따질 일은 아니다. 그저 밀가루 20Kg이 약 2만원, 메밀가루 20Kg이 수입산은 11만 원선, 국산은 22만 원선이라는 사실만 기억하자. 메밀. 상당히 비싸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우래옥 : 서울 중구 창경궁로 62-29 / 02-2265-0151

     2.   남포면옥 :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4 / 02-777-3131

     3.   평양면옥 : 서울 중구 장충단로 207 / 02-2267-7784

     4.   장원막국수 : 강원 홍천군 홍천읍 상오안길 62 / 033-435-5855

     5.   춘천산골막국수 : 서울 중구 을지로 175-5 / 02-2266-5409

     6.   삼군리 메밀촌 : 강원 횡성군 공근면 삼배리 1 / 033-342-3872

     7.   능라도 :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산운로32번길 12 / 031-781-3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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