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겨울이다. 아귀가 제철이다. 아귀찜과 아귀수육. ‘강추’할 만한 음식들이다. 비싸지만 겨울철에는 누구나 매콤한 아귀찜과 고소, 구수한 아귀수육을 먹었으면 한다. 불행히도 제대로 된 아귀찜과 수육은 드물다. 아귀 이야기다.

비린내 나는 생선과 불교? 어울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아귀’ 혹은 ‘아구’라는 생선을 이야기하자면 어차피 불교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불교에 ‘아귀餓鬼’라는 표현이 있다. ‘축생아귀畜生餓鬼’에서 시작된 표현이다. 아귀는 상상 속의 존재다. 아귀의 생김새는 비극적이다. 입과 목구멍은 작고 몸은 크다. 큰 음식물은 못 삼키고 작은 음식물만 먹을 수 있다. 아무리 자주, 많이 먹어도 배는 부르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늘 배가 고프다. 그래서 “아귀같이 먹는다”는 표현이 있다.

아귀는 아귓과의 생선이다. 아귀는 불교의 아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입과 머리가 몸 전체의 9할쯤 된다. 입이 아주 크다. 자기 몸만큼 큰 생선도 삼킨다. 소화력도 뛰어나다. 아귀찜의 아귀는 살이 별로 없다. 아귀찜은 이름만 아귀찜이고 실제로는 콩나물 찜이라는 불평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아귀는 비싼 생선이다. 뼈에 붙은 작은 살조각까지 먹어야 한다.

▲중간에 있는 입 큰 생선이 아귀다. 오른쪽은 돌상어.

불교의 ‘아귀’는 바늘구멍만큼 작은 입이지만, 생선 ‘아귀’는 몸 전체의 대부분이 입이다. 과연 생선 아귀가 불교 아귀에서 온 표현일까? 의심스럽다. 아귀는 아구, 아구창에서 온 표현이 아닐까, 라고 짐작하고 있다. ‘아구’ ‘아구창’은 사투리다. ‘입’이다. 1980년대까지도 아귀를 널리 먹지 않았다. 그물에 걸린 놈을 보면 입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징그럽게 생긴 것이 몸체도 없고 입만 하나 가득이다. 어부들이 “뭐야, 이거, 아구창 밖에 없잖아”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구창, 아구, 아귀…. 오히려 논리적이고 그럴 듯하지 않은가?


아귀찜에 얽힌 사연

아귀의 계절은 12월-2월 무렵이다. 사시사철 잡히지만, 겨울 아귀가 맛있다. 무, 대파 정도만 넣고 푹 끓인 다음, 고춧가루만 더해서 먹으면 아주 시원하다. 겨울에 따뜻한 탕으로 즐기는 제철 생선에 물메기(곰치)도 있다. 실물을 보면 물메기와 아귀는 전혀 다르다. 물메기에 비하면 아귀는 잘 생긴(?)편이다. 흉측하지만 제대로 물고기의 꼴을 갖추고 있다. 물메기는 그야말로 곰처럼 둔하게 생겨 곰치라고도 불린다. 영남에서는 ‘물메기’, 서해안 인천 언저리에서는 ‘물텀벙’이라 부른다. 물메기는 예전에는 널리 먹지 않았던 생선이다. 물컹물컹한 놈이 잡히면 어부들은 그물에서 빼낸 다음 뒤로 버렸다. 물메기가 물에 빠지면서 ‘텀벙’ 소리를 낸다고 ‘물텀벙’이다. 1980년 무렵에도 아귀나 물메기 모두 널리 먹지 않았다. 잡아도 버렸다. 땅에 버리면 삭아서 거름이 된다. 그래서 ‘비료로 쓴다’는 말

▲물메기. 사진 상으로 잘생기게 나온 편이다. (사진 제공: 국립수산과학원)

1980년대 서울 골목에는 군데군데 아귀찜 집이 있었다. 직장선배들을 따라서 수도 없이 자주 아귀찜 집에 갔다.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매운 걸 못 먹는데다 아귀찜은 각별히 매웠다. 아귀 맛은 모르겠고, 콩나물과 고춧가루 범벅만 기억난다. 가끔 지금은 귀한 미더덕을 씹다가 입천장을 덴 기억도 있다.

아귀찜을 먹고 나면 땀이 쏟아졌다. 안면 있는 아귀찜 집 주인들은 늘 “목욕비는 따로 내라”고 놀렸다. 아귀찜은 맵다는 기억만 남겼다.

경남 마산 지역에서 아귀찜이 시작되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겨울이 되면 마산의 아귀찜 전문점들은 겨울바람에 아귀를 말린다. 생 아귀 대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마른 아귀를 쓰는 것이 이 지역의 특징이다. 지금은 마산에도 생 아귀와 마른 아귀를 모두 사용하지만 마산 아귀찜의 원형은 꾸들꾸들하게 말린 ‘건 아귀’를 사용한 것이다.

▲울산 ‘동해아구찜'의 아귀찜. 두툼한 살코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아귀찜, 착한 식당을 찾아서

방송을 했으니 기록이 남아 있다. 2014년 8월의 일이다. 아귀 계절도 아닌데 “채널A_착한식당” 팀에서 “착한 아귀찜 전문점을 찾아보자”는 의뢰가 들어왔다. 무더운 날씨다. 더운 날의 매운 음식? 힘들다. 아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자주 가지도 않았지만 “그래 이번 기회에 아귀찜 공부를 해보자” 싶어서 승낙을 했다. 검증 겸 촬영을 시작했다.

‘착한식당’ 제작진은 검증 대상 식당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까봐 현장으로 가면서 봉고차 안에서 행선지를 알려준다. 이게 함정이었다. 제대로 된 집을 찾기까지 무려 23집을 갔다. 미리 이야기해주면 상당 부분을 제외시킬 수도 있으련만 미련하게 제작진이 선정한 집을 다 다녔다. 이때 평생 먹을 아귀찜을 다 먹었다. 안 먹을 수도 없고, 검증 차원에서 모두 맛을 봤다. 하루에 매운 아귀찜을 5번 이상 먹고 나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몸은 탈수 상태에 이른다. 아귀찜은 맵고, 땀은 비 오는 듯했다.

▲부산 '복순아구찜'의 아귀찜. 부산의 아귀찜에는 방아잎을 넣는 경우가 많다.

검증 조건이 까다롭지 않았냐고? 그렇지도 않았다. 국산 아귀 사용이 원칙이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아귀의 1/3 만 국산. 나머지 2/3는 중국산 냉동 아귀였다. 문제는 위생상태. 냉동 아귀를 사용하면 어쩔 수 없이 해동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이른바 드립이 생기고 위생상의 문제도 생긴다. 천연조미료를 사용할 것. 간장, 된장, 고추장을 전부 직접 담가서 사용하는 식당이 있는데 공장제조 장을 사용하는 집을 착한 식당으로 선정할 수는 없었다.

인천, 서울 성수동, 신촌, 경기도 성남시, 분당, 충청도 신탄진, 대구, 울산, 마산과 부산,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행선지로 포항에 이르렀다. 총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걸렸다. 그야말로 ‘착한 아귀’ 찾아 천릿길을 몇 번씩 다녔다.

포항에 있는 ‘부산아귀찜’. 미량의 인공조미료를 사용하는 바람에 ‘준 착한식당’에 선정되었다.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후, 제작진과 검증위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만 정작 고마워해야할 사람은 검증위원들이었다. 만약 ‘부산아구찜’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해 여름 얼마나 많은 아귀찜을 더 먹어야 할 지 모를 판이었다.

    

▲포항 ‘부산아구찜’에서 맛본 아쉬 수육과 아귀 간. 생아귀를 삶아 간장에 찍어먹는 맛이 별미다.

팁 하나. 포항의 ‘부산아구찜’에서 제대로 된 아귀수육을 맛봤다. 일본인들은 간肝 요리 그중에서도 아귀 간을 ‘안키모’라고 부르고 푸아그라보다 낫다고 말한다. 이해가 되었다. 신선한 아귀 간을 잘 삶아내면 고급 치즈의 녹진한 맛이 난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동해아구찜: 울산 남구 신정로20번길 2 / 052-273-0050

     2.   복순 아구찜: 부산 동래구 석사북로95번길 20 / 051-503-5222

     3.   부산 아구찜: 경북 포항시 북구 중앙로245번길 14 / 054-285-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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